2026년 10월, 아스날은 한 사람의 부고를 전했다. 종신 명예회장 켄 프라이어(Ken Friar OBE), 향년 92세. 열두 살 심부름꾼으로 클럽에 들어와 매표소 직원, 사무국장, 전무이사를 거쳐 명예회장이 되기까지, 한 클럽에서만 80년 가까이를 보낸 사람이다. 아스날 팬들이 그를 '미스터 아스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그가 걸어온 길을 따라 정리했다.
공 하나가 바꾼 인생

켄 프라이어는 1934년 런던 이슬링턴에서 태어나 옛 홈구장 하이버리 근처에서 자랐다. 1946년, 열두 살 소년이 길에서 차던 공이 마침 지나던 아스날 감독 조지 앨리슨의 차 밑으로 굴러 들어갔다. 공을 꺼내러 온 소년의 열정을 눈여겨본 앨리슨은 그에게 경기 날 심부름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아스날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매표소에서 사무국장까지

1950년 학교를 마친 그는 클럽 매표소에서 정식 직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티켓을 팔고 관중을 맞던 이 경험은 이후 그가 내린 많은 결정의 바탕이 됐다. 성실함을 인정받은 그는 1973년 1월 선배 밥 월의 뒤를 이어 클럽 사무국장(company secretary)이 됐다. 1970년대에는 아스날과 토트넘이 알렉산드라 팰리스에 새 경기장을 함께 짓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도 참여했다. 북런던 라이벌이 한 경기장을 나눠 쓸 뻔했다는, 지금 들으면 놀라운 이야기다.
전무이사 17년, 팬을 먼저 생각한 운영

1983년 2월, 피터 힐-우드 회장은 그를 전무이사(managing director)로 임명했다. 그는 2000년까지 17년 동안 감독과 선수 계약 협상을 맡았고, 지역사회와 서포터와의 관계를 다졌다. 특히 다른 경기장들이 관중석 앞에 철망을 세우던 시기에, 하이버리에는 철망을 설치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시킨 일이 자주 회자된다. 매표소에서 팬들을 직접 만나 본 사람다운 선택이었다. 2000년에는 축구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 훈장(OBE)을 받았다.
하이버리에서 에미레이츠로

2000년 전무이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이사회에 남아, 클럽 역사상 가장 큰 프로젝트였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이전에 집중했다. 하이버리에서 에미레이츠로의 이사는 2006년에 마무리됐다. 2008년에는 경영진 교체 공백기에 임시 전무이사를 맡아 다시 클럽을 이끌기도 했다. 2004년에는 고향 이슬링턴 자치구의 명예 시민(Freedom of the Borough)이 됐다.
왕실과 이어진 아스날

영국에서 축구 클럽이 왕실과 직접 교류하는 일은 흔치 않다. 켄 프라이어는 왕실과 쌓아 온 관계를 바탕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개장식에 직접 참석하도록 일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2006년 개장식 당일 여왕이 건강 문제로 오지 못하면서, 에든버러 공작(필립 공)이 대신 개장식을 맡았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몇 달 뒤 여왕은 아스날 1군 선수단과 스태프를 버킹엄궁으로 초청했고, 켄도 선수단과 함께 여왕을 만났다. 그는 훗날 이 일을 돌아보며, 여왕이 클럽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켜 줬다고 회상했다.
인연은 그 뒤로도 이어졌다. 2020년 FA컵 결승 때는 특별히 선정된 아스날 서포터들이 여왕의 샌드링엄 영지에서 윌리엄 왕자와 함께 경기를 볼 수 있었다. 매표소에서 시작한 사람이 클럽과 왕실을 잇는 다리가 된 셈이다.
이름이 남은 다리와 동상

2011년 4월,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과 지하철 아스날역을 잇는 북쪽 다리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수많은 팬이 경기 날 이 '켄 프라이어 브리지'를 건너 경기장으로 향한다. 경기장 북쪽, 아스날 박물관 맞은편에는 어린 시절 하이버리 앞에서 공을 차던 소년 켄 프라이어의 동상도 서 있다. 2020년 9월 이사회에서 은퇴하며 그는 종신 명예회장(Life President)으로 추대됐다.
80년을 한 클럽에서

구단은 그의 별세를 알리며 80년이 넘는 인연을 기렸고, 챔피언스리그 릴전에서 선수들이 검은 완장을 찼다. 10월 24일 에버턴과의 프리미어리그 홈경기에서도 추모가 이어질 예정이다. 길에서 공을 차던 소년이 매표소를 거쳐 클럽의 얼굴이 되기까지, 켄 프라이어의 이야기는 축구 클럽이 결국 사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에미레이츠 직관 때 들러 볼 곳
켄 프라이어 브리지 — 아스날역(피카딜리선)에서 경기장으로 걸어가는 북쪽 다리. 다리 이름 표지를 찾아볼 것.
켄 프라이어 동상 — 경기장 북쪽, 아스날 박물관 맞은편. 공을 차는 소년의 모습이다.
아스날 박물관 — 하이버리 시절 자료를 볼 수 있어 동상과 함께 둘러보기 좋다.
참고한 자료



